- 울산문화담론 - 1. 말로의 빗나간 예측, 공급의 역설
  
▲ 프랑스 문화의집은 고급예술을 국가 전역에 전파하자는 취지로 건립됐다. 1968년 건립된 ‘그르노빌 문화의집’.
                                 

감상위주 지원 큰도움 안돼


취미 없으면 무료라도 외면
시민참여 이끌 정책이 필요



1959년, 대문호 앙드레 말로(A. Malraux)가 프랑스 초대 문화부장관이 되면서 처음 한 일은 ‘문화의집(Maison de la Culture)’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고급예술을 파리의 상류계층만이 아니라 지방의 대중들에게도 감상 기회를 주는 것이 민주화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대중들은 문화의집을 찾지 않았고 오히려 지방 유지들의 구락부가 돼버렸다. 문화의집은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켰다. 10년 후 자크 듀아멜(J. Duhamel) 장관은 말로가 폐기했던 학교의 예술교육을 복원하고, 대중들에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public access)을 실시했다. 그기고 자크 랑(J. Lang) 장관은 엘리트 예술중심의 정책을 검토하면서 서커스나 광대공연 등 일반민중들의 거리예술과 생활예술도 ‘예술’로 인정하고 지원했다. 시민를 위한 프랑스의 사례는 오늘날 세계문화정책의 본보기가 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다양성’의 토대가 되었다.


‘재화와 서비스의 무료공급이 어째서 불평등을 심화하는가’라는 의문은 ‘모르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으로 쉽게 풀린다. 대중들은 무료라고 해서 예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취미·취향이 있어야 찾는다. 무료공급은 이미 문화생활을 하고 있고 동기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때문에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프랑스 문화의집 역설도 ‘파리의 고급예술이 프랑스 민중들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에 생겼다. 이처럼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은 역주행 할 수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프랑스 문화민주화가 실패한 원인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관객을 확대하기보다는 공급을 증가한 것에 있다”고 고백했다.

  
▲ 이강민 울산미학연구소 봄 대표

그런데 앙드레 말로의 실패는 한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극장 운영이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되는 시기와 맞물려 1도시1극장과 같은 하드웨어 공급사업이 집중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많은 시·구립 문화예술회관이 생겼지만, 공연장 가동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결국 ‘공연장 상주예술단체 지원사업’이라는 고육책을 마련했다. 공급중심 사례는 예술가 중심 정책에도 있다. 울산시의 문화예술지원은 대부분 예술가 지원이며, 신규사업도 청년예술가·창작콘텐츠와 같은 예술가 지원이다. 문화예술관련 시설 역시 소공연장·공연연습실과 같은 예술가 중심 시설이 건립된다. 심지어 중앙정부와 협력으로 운영하는 구단위 생활문화센터마저 예술가 레지던시(residency)로 운영된다. 이러한 공급중심 울산문화정책의 백미는 다른 시도에서 강조되는 생활예술이나 공동체예술, 시민예술지원이나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공간인 시민공연연습장, 생활문화센터, 생활문화예술축제 등과 같은 용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제조업 시대가 아니라 서비스-체험경제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사르코지의 고백이 맞다면, 문화와 개발이라는 유엔의 선택이 옳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미 최고로 낙후된 문화정책을 가진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이강민 울산미학연구소 봄 대표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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