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시인 강연



울산민예총에서는 해마다 예술문화아카데미 행사인 예술여행 ‘공감’이라는 특별프로그램을 열어왔다. 울산시 대표 문화예술문화축제인 처용문화제를 둘러싼 핵심에 있는 처용설화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단지 역사 논쟁이 아닌, 문학적 시각으로 처용설화를 재해석한 백무산 시인의 강연을 강연자의 입말로 풀어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백무산 시인 ⓒ이동고 기자



울산의 ‘정체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자리를 빌어 두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나는 ‘울산문화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정체성을 함부로 논할 문제는 아니다. 아주 다양화된 사회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누가 개인에게 ‘당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황할 것이다. 정체성은 여러 개일 수 있고 또 개인의 자아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 지역의 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 말하고 싶어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체성이 아니고 ‘정체성을 어떻게 볼 것이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정체성을 볼 것인가’의 문제다.
또 하나는 문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야만성’에 대응되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근대적 문화개념이 계몽주의자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야만성이라는 것이 하나는 ‘자연적 조건의 미개한 상태’ 또 하나는 ‘비이성적 사회의 대응으로서 문화’를 말하는 것이고 ‘이성적 인간관을 실현’한다고 개념지어 왔다.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절대왕정 권력을 무너뜨리고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양식을 만들어가는 기본, 증거물로서 문화가 이야기되었다. 그래서 문화는 ‘인권, 해방 또는 자유’라는 기치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야만성을 극복하기 위한 행위가 알고 보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행위, 자연을 지배하는 행위라는 데 있다. 인간이 이성적 지배 질서를 만들기 위해 인간의 통제, 지배 행위가 내포된 것으로 문화는 ‘새로운 야만’을 만들어 낸다. 문화는 좋은 것이다 생각하기 쉽지만,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문화가 낡은 질서를 유지하는 정치적 도구 역할도 있을 수 있다. 낡은 문화와 질서를 타파하면서 등장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진정한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디 있는 것’이나, ‘어디 있어 온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있어야 할 것’ 가운데 찾아야 하는 것이 문화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만이 문화라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것이라도 새롭게 해석하면서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쉬웠던 건 울산역 없앤 것

울산지역 문화의 현 주소와 관련해서 두 가지 사례를 얘기하고 싶다. 1990년대 중반기 사례인데 그냥 대비되는 예로 들어봤으면 한다. 울산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었다. 하나는 울산사람들이 누구나 이용하는 추억과 애환이 깃든 공간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 기록물로만 존재하던 공간이다. 1990년대 중반, 이제 그 운명이 뒤바뀌었다. 시민들과 또 울산 공단의 역사가 담긴 공간은 완전히 사라졌고, 또 하나는 울산의 랜드 마크로 바뀌었다. 하나는 태화루이고 또 하나는 학성동 울산역이다. 내가 울산에 와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울산역을 없앤 일이다. 역사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보존했어야 했던 건물이었다. 울산박물관 속 산업관에 가보면 생산물, 부품들, 화학약품들을 전시해 놨다. 50년 동안 그것을 만든 노동자들의 기억과 애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굉장히 힘들 시절 그 기차역으로 사람들이 나고 들고 했는데 인구 50만이 될 때까지 기차가 유일했다. 80년 중후반, 90년 초반까지도 밀양을 가려면 기차로 부산역에 가서 경부선을 이용하는, 도로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절엔 유일한 통로였다. 공단의 자재, 철강, 시멘트 등을 실어 날랐고 50년의 땀이 묻었던 역사였는데 그걸 다 지워버렸다. 울산역 앞에는 역전시장이 열렸다. 그 광경, 일거리를 찾아 오고 떠났던 그 장소를 보존 못 했던 것이 아쉽다. 1935년도 동해남부선이 들어서면서 개설한 역이었고 동해남부선 최대의 역이었다. 그보다 앞선 역이 성남동역이다.

졸부들 상징처럼 된 태화루

또 하나 태화루가 있다. 신라 중기 때 자장율사가 사찰의 부속건물로 지어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고 고려와 조선 때 관청에서 이어받아서 태화루가 유지되다가 임진왜란 때 불탔는지 자연소실되었는지 불확실하다고 한다. 과거 기록을 보면 무너지고 허물어진 이야기가 나오고 제대로 관리되지도 않았다. 울산에 유림문화, 선비문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 조선 때 어떤 기간 동안에 급제한 사람이 경주에 60명 정도 되었을 때 울산은 2명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때 울산 인구가 4000명이라는 기록도 있듯이, 울산은 아주 변방 군사지역이었고, 거의 야전상태인 고장이었다.
태화루, 500년 전에 사라진 것을 복원해 놨는데 가서 보고는 너무 놀랐다. 지금은 7대 누각이라고 한다. 영남의 3대 누각이 영남루, 촉석루, 태화루라 하는데 소실되어 없어진지가 500년이 지났는데 그런 명성을 가질 리가 만무하다. 지금 7대 누각이라는데 7대 누각 중에 태화루가 가장 크다. 촉석루는 읍성의 누각이고, 영남루는 객사의 누각이면서 중요한 자리지만 태화루는 별개로 지어진 풍경 부속건물일 뿐인데 무려 7칸을 만들어놨다. 정면 5칸 집이다. 지금 학성관 앞에 지었던, 그 현판을 붙여 태화루라 했던 건물은 원래 3칸 자리인데도 굉장히 웅장한데 5칸 자리 부벽루도 그리 안 큰데 무려 7칸 자리를 지었다. 7칸 자리는 어느 정도냐면 지금 경북궁 경회루가 7칸이다. 울산의 랜드 마크라 하는 것이 졸부들 상징처럼 되었다. 기둥마다 화려하게 주심포를 달았는데 이는 본 건물 아니면 달지 않는 것이다. 경회루도 입공을 간단하게 하고 마는데 아주 복잡 화려한 장식을 해 놨다.
울산초등학교 자리가 객사 자리인데 미술관을 짓지 않고 객사를 복원하겠다고 한다. 객사를 복원한다면 옛날 봉건시대 때는 자기 선대 위에 무덤을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양식에 질서가 있기 때문에 부속건물을 저리 크게 지었으면 객사는 왕이 집무를 보던 근정전만하게 지어야 격식이 맞는데 어떻게 지을지 지켜보고 싶다.
90년대 중반 공단은 안정기에 들어왔고 부자도시라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따라오는 이름이 공해도시, 회색도시, 문화불모의 도시, 유흥의 도시, 또 설문조사 시 가장 살고 싶지 않은 도시로 손꼽혔다. 행정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문화, 정신문화를 좀 살려보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런데 이전에 파괴만 해온 일방적인 건설행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뤄지면 좋겠는데 정신문화도 밀어 붙이면 된다 식으로 갔다. 우리는 더 크게 지을 수 있어, 여기가 중심이야 하는 식으로 접근했다고 보면 된다. 울산은 문화의 중심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중심 문화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따라오는 것이 바로 처용이다. 처용에 대한 전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울산은 역사적으로 철저히 변방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울산경찰서 유치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유치장은 방사꼴 방이 7개인데 부채꼴로 되어 있었다. 방 6개가 하나하나가 마치 케이크를 잘라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간수가 중앙에 있으면 방을 다 한 눈에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감시할 구조로 되어 있다.
30년 전 그 유치장을 보고 쓴 글도 있는데 미셀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에 심도 깊게 분석을 해놨다. 권력이 국민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 조종하는지 건축적 모형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18세기말 영국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이 감옥은 전 세계 감옥의 모델이 되었다. 그것이 일제시대 지어졌다. 권력이 전 국민을 감시하는 방식, 판옵티콘(Panopticon) 권력이 전체를 보고 있다. 항상 감시하고 있다는 걸 주지시키는 것이다. 감시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과 당신은 감시당하고 있어라는 것을 주지시켜서, 알아서 자기 검열을 심어주는 방식이다. 국가권력이 작동하는 건축학적 방식이었는데 그것이 중부경찰서 유치장이었다. 중부서가 옮겨지면서 부수면서 화장실을 만들었고 지금 미술관을 만든다고 뒤집어 놓았다. 지금도 국가폭력은 여전히 있고, 야만의 시대에 남아 있던 유물로 좋은 교육자료였는데 없앴다.
이제 처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91년도 공업축제가 처용문화제로 바뀌었는데 차라리 공업축제가 나을 걸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와서 ‘처용문화제를 해보지’하니 덥석 받았던 모양이다. 지역 연구 성과나 지역정서나 정신에 대한 분석 없이, 왕이 나오고 처용이 나오니 이곳은 중심이 아닌데 또 뭔가 중심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울산은 역사적으로 철저히 변방이었는데, 변방문화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권력중심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자생적이고 건강한 문화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굳이 열등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문화는 사회적 성찰의 결과물인데 지금 울산에서 문화는 지배문화를 끌고 오는 것이다. 전복과 도전, 새로운 사회양식을 만들려는 것이 문화의 본성인데 지배문화를 끌고 오려는 역행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문화계에서 이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처용=관용과 포용?

처용을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것이 스캔들인데 이를 관용과 포용으로 포장하고 있다. 처용에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있느냐는 문제다. 역사학자들이 끊임없이 논쟁을 하는데 무의미하고, 역신이냐 아니냐, 스캔들이냐 불륜이야, 열병이냐 마마신이냐 이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처용의 행위 속에 관용과 포용이 있느냐 문제다.
처용문화제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관용과 포용이라는 말을 할 계제가 되던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가? 전혀 아니다. 교과서에 나오고 양주동 박사가 이야기했다 하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깊이 봐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처용은 역사적 기록에 기반하고 있지만 문학이고, 처용설화라고 하는데 설화는 또 문학이다. 이것은 역사의 규명이 아니라 문학적 규명이 필요하지만 아직 미흡하다. 문학적 접근이라는 것은 미네시스(minesis) 즉 재현, 모방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문학과 예술이 가진 아주 독특함인데, 문학은 뭔가 설명하고 개념화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은 말 그대로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우리가 설명하고 주장하게 되면 자기 개념의 그물망으로 하게 된다. 문학은 그렇게 하지 않고 모방과 재현을 통해, 그 대상을 살려 놓고 그대로 접근하게 하는 방식이고, 그대로 대상에 동화되는 과정이다.
소설을 쓰는 분들은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도 주인공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 먼저 스토리를 짜 놓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 작가는 주인공이 자기 갈 길을 놔둔다.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을 설정해두면 작가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주인공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놔두는 것이다. 이것을 허구적인 미네시스라고 한다면, 우리는 자주 개념적인 억지를 통해 사물(死物)화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된다. 이것이 철저히 문학적으로 보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이렇게 나온다. 역신이 처용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공의 처를 탐내어 지금 범했는데도 공이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탄스럽고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맹세코 앞으로는 공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처용가는 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왔던 노래고, 처용이 그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처용가와 전해지는 풍습 등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해서 재현해 보여주는 것이다.
처용을 해석하는데 역병, 마마, 학질이라든가 전염병이 역신이라는 주장이 있고, 이 처용설화를 남녀 간의 문제라고 하면서 처용학술대회에서 서로 싸운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이 두 가지 다로 이야기해도 상관없고 다른 상상을 해도 문제가 없다. 남녀 간 성의 문제를 다뤘든 성의 문제를 역신으로 반대 은유를 했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충격적인 일본영화가 있는데 장면은 변태성욕자 이야기인데 다 보고 나니 이것이 성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전 화면은 성적인 장면인데 감독이 1930년대 광적인 일본 내 군국주의자들을 변태성욕자로 묘사 해놓았다. 이 영화를 보고 ‘변태성욕자의 영화’다, ‘제국주의 영화다’라고 따질 것도 없다. 만약 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 좋은 작가라는 것은 작품 속에 자기주장을 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고, 독자들이 오히려 문학 속에서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처용설화 어디에도 관용과 포용의 상황은 없다

처용설화에 사건의 큰 요소는 하나는 역신이 침범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폭력 상황이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간통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느 상황이든 관용과 포용의 상황은 없다고 단정한다. 왜냐면 역신이 침범한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을 보고 나왔다는 것이고 춤과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관용과 표용이라고 했는데 관용과 포용이 아닌 행동은 뭘까? 역신에게 주먹질을 하나, 아니면 몽둥이질을 하나. 관용은 불관용을 전제로 한 것인데 그럼 불관용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포용과 관용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역신에게 불관용 상황을 설정할 수 없다.
요즘 우리에게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낫지 않는 병이 있어서 무당들에게 기대고 하는 일이 많다. 방식이 첫째 상을 떡 벌어지게 차린다. 음식을 많이 차리고 통돼지를 올린다. 그렇게 해서 ‘달랜다’라는 표현을 쓴다. 역신이나 잡신이 침범하면 여러 잡신을 ‘대접해서 보낸다’고 한다는 것이다. 떡 벌어지게 음식을 차려 놓고 춤추고 달래는 행위가 무당이 하는 일이다. 처용의 행위와 무당의 무속행위가 별다른 것이 없다. 관용이라 하는 말은 억지다. 물론 무당이 입에 칼을 물고 ‘처용이 아시면 열병신은 횟감이다’ 식으로 지금도 이야기하지만,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보내는 것이 기본이다.
처용이 나와 춤을 추는 것은 특별한 인격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도 있는 것인데, 엄청난 인격소유자가 그 장면을 보고 포용과 관용이다 할 때는 설득력이 없고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인데 주장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그런 주장을 한다.
두 번째 설정은 성폭력 상황이다. 그럴 땐 이렇게 주장한다. 폭력적 상황이긴 하지만 처용이 보고 물러나와 위해를 가하지 않고 춤추고 노래했다 식으로 이야기한다. 지금 폭력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누가 관용을 베푸나. 문학적 판단으로 돌아가서, 톨스토이의 ‘안나까레리나’는 외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있는 방문을 열려는데 심리가 아주 복잡하다. 애를 어떻게 보며 어떻게 이야기하며 등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60번을 고쳐 적었다고 한다. 상황에 대해 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누가 폭력을 당하는데 누가 관용을 베푸는 것일까? 만일 물건이라면 조금 상하면 돌려만 주면 좋겠는데 이게 아니다. 폭력적 상황인데 춤추는 것이라면 처용 자신이 그런 행동을 보일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어떤 근거도 없다. 만약에 여자가 관용을 베풀어도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뒤에 할 상황이고 지금은 폭력적 상황인 것이다. 이걸 두고 처용이 대단한 인격적인 정신이고 이것이 울산의 정신이고 우리민족의 고귀한 정신이다라고 하는데 황당한 이야기다.(다음호에 계속)

정리=이동고 기자

출처 : 울산저널i(http://www.u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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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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