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시인 강연



울산민예총에서는 해마다 예술문화아카데미 행사인 예술여행 ‘공감’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열어왔다. 울산시 대표 문화예술문화축제인 처용문화제를 둘러싼 핵심에 있는 처용설화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단지 역사 논쟁이 아닌, 문학적 시각으로 처용설화를 재해석한 백무산 시인의 강연을 강연자 입말을 풀어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처용무에 담긴 처용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드름 연희단’의 김구대 씨가 처용무를 추고 있다. ⓒ이동고 기자



신라 골품제 하 궁중 성 풍속

또 하나의 상황이 남는다. 처용이 아무리 정숙한 아내라 하더라도 귀족 불량배가 폭력을 가했다.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아내가 폭력을 당하고 있는데 관용을 베풀 상황이 아닌 것이다. 만일 음흉한 간통 상황이라면 용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잡하다.
신라 풍습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잘 알아서가 아니다. 신라의 <화랑세기>에 보면 왕실에는 색공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어색, 마복자라는 제도도 있는데 마복자(磨腹子)라는 것은 자기 하급자 아내가 임신을 하면 상급자에게 상납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급자 아이가 되기도 하고 자기 아이가 되기도 해서 출세 길이 열린다. 형사취수제도 자기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한 제도인데 지금도 일부 민족에는 남아 있고, 삼서제라고 선덕여왕은 남자 여럿을 두었다는데, 신라 궁궐에는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미실이라는 색공이 있었다. 미실 동생은 미생인데 어색, 즉 여자를 낚으러 다닌다. 평민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이 당도인데 당도의 아내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했다. 미생이 그 여자를 첩으로 삼았다. 그러니 당도가 미실한데 찾아간다. “아이들이 울고 밥을 안 먹습니다. 그러니 색공으로는 쓰시되 첩으로는 거두어주시길 바랍니다.” 공공연하게 이런 일들이 많았다.

골품제 하의 복잡한 신라 궁궐 가계도

천전리 각석에는 진흥왕이 어릴 때 아버지 갈문왕을 따라 왔다가 놀다간 이야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신라 골품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왕실 가계도는 이 집안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갈문왕은 그전 왕 법흥왕의 동생이다. 법흥왕 딸이 있었는데 법흥왕 동생과 결혼해서 진흥왕을 낳게 된다. 그러니까 법흥왕이 볼 때는 진흥왕은 자기 손자이기도 하고 조카도 되는 것이다. 또 법흥왕과 갈문왕을 낳은 지증왕인데 왕이 되기 전에 자기 아내를 임신을 한 상태에서 마립간에게 색공으로 보낸다. 지증왕도 왕이 될 것은 아닌데 왕이 되고, 천전리 각석 명문에 그런 내용이 다 나온다. 갈문왕이 그곳을 올 때 사랑스런 누이와 같이 왔다고 되어 있다. 그 누이도 누군지는 모른다. 왕의 왕비도 다른 남자를 취하고 그곳에서 얻은 아이를 왕이 인정한 사실이 나온다. 그 전에 화랑도는 폐지가 되었고 이런 시기에 헌강왕이 처용에게 미녀를 주고 벼슬을 줬다. 처용의 예쁜 아내를 왕족들이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을이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가능한가

처용이 벼슬을 얻었다고 하는데 ‘급간’이라는 17관등 중에 9번째 관직이며, 공무원한데 물어보면 현재 5급 서기관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벼슬은 돈도 없다. 그런 처지에 신분제 사회에서 문제를 삼아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만일 역신을 ‘귀족 불량배’로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통 상황이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뺏겼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관용이라는 것은 상급자가 가지지 못한 못 가진 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똘레랑스’라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위대한 정신이라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민심이 굉장히 어려워진 시기, 그럴 때 나온 것이 바로 똘레랑스다. 처용이 자기 아내를 범한 귀족에게 베풀 수는 없다. 을이 갑질하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는 있겠는가? 자기 아내를 색공으로 바치면 벼슬자리나 한자리 할 것 같아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처용이 인격이 높아 진짜 관용을 베풀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 관용은 내가 겁이 나서 후환이 두려워서이지, 관용이 통하지는 않는다. 을이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복종이 된다. 속으로 ‘저 녀석이 나한테 한 자리 달라는 거야 뭐야’ 식으로 관용이라는 것이 억지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처용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비극, 하지만 승화된 이야기

문제는 왜 이런 문제를 지금까지 이렇게 끌고 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걸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을까 하는 문제다. 이런 것은 나 혼자 본 것인 아닐 것이다.
가진 자들이 사회모순을 ‘관용과 포용’이라는 것으로 치장해왔다. 우리 문학에는 이상하게도 비극이 없다. 기원전 3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론이란 것도 쓰는데 우리는 권선징악, 일부종사, 혜원상생(가슴속에 맺혔던 원통함을 풀고 같이 살아감) 등으로 끝을 낸다.
셰익스피어는 비극작가이기에 유명해진 것이다. 비극은 인간의 한계, 모순, 욕망, 햄릿 같은 우유부단함, 권력야욕 등으로, 결국은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을 맞이한다.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핍박을 받아서 이야기 끝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자고 했는지 마지막에는 해피엔딩, 권선징악이고 나쁜 놈들이 다 처벌받고 착한 사람이 상을 받는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처용 이야기를 그냥 비극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단지 스캔들이 아니라 후대사람들이 뭔가를 더 승화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던 욕망 때문에 이런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비극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다. 인간의 한계와 고난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과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강왕 시대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헌강왕이 개운포로 왔다. 삼국사기에는 개운포가 아니라 ‘동주’라고 이야기했는데 헌강왕은 태평성대의 왕으로 되어 있다. 헌강왕이 개운포에 왔을 때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나이가 어려 삼촌이 섭정을 5년간 했다고 한다. 섭정이 끝나고 개운포로 왔다니 15살 이상이라고 본다. 사냥을 하러 왔다고 하는데, 뭘 사냥을 했느냐면 여자 사냥이 포함되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어색(漁色)을 많이 했다고 나온다. 어색을 해서 낳은 아이가 왕이 되었기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난봉꾼처럼 다니다가 처용을 만나 데리고 갔다.
헌강왕은 6년 재위하고 20대 중반 나이에 죽는데 왜 그렇게 일찍 죽는지 모른다. 그 다음 왕은 자기 동생으로 정강왕인데 1년 만에 죽는다. 이 시대는 태평성대 시기가 아니라 대단히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궁중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나오는데, 왜 태평성시대라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경문왕인데 그 때는 세 번이나 반란이 일어나서 걸(사람을 찢어죽이는 형벌)이라고 하는 형벌을 내린다. 그런데 모두 왕궐 안에서 일어났다. 윤흥은 ‘이참’ 벼슬이라면 성골인데도 반란을 일으키고 신라는 쇠퇴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정강왕도 1년 만에 대단한 반란이 일어나 죽는다.
그 다음이 진성여왕으로 ‘위흥’이 짝이었는데 정사를 맡겼지만 죽고 남자들을 끌어들여 음란하게 놀고, 그들이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하고 기강이 아주 해이해졌다. 조정거리에 방을 붙여 여왕을 비방하고, 그 혐의자를 가두니 갑자기 구름이 몰리고 안개가 피고 벼락이 치고 혐의자를 풀어줬다. 창고가 비고 재정이 궁핍했다. 세금을 늘리니 도적 떼가 벌떼처럼 일어났고 반란이 진압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고 나온다.
그로부터 5년 뒤 궁예가 나오고 견훤이 나온다. 후백제가 나오고 후고구려가 나오는데 이는 처용이 신라왕정으로 들어간 뒤 10년 후다. 890년대이지만 930년대 경애왕 전에 신라는 이미 망한 나라였다.

처용이 처한 시대, 최치원 개혁도 실패

처용은 급간벼슬을 가지고 살았고 5년 만에 헌강왕이 죽어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도 없고 완전 변방 사람이다. 울산사람, 울산호족, 또는 아니면 아라비아 상인이라고 한다. 그가 누구든 왕궁에 들어갔지만 중하인 직급을 가지고는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 처용의 역사적 배경이 그렇다.
그 때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온다. 유학에서 돌아오는데 6두품 벼슬이다. 당나라에서는 ‘해동성자’라고 불리며 현재 국장, 차관은 할 수 있는 벼슬로 돌아온다. 강영이나 작은 고을에 있었지만 차관급 개혁안을 올린다. 하지만 자기 뜻을 별로 펼치지 못한다.
29살에 당나라 경험을 되살려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을 올리지만 좌절된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당나라를 완전히 집어 삼켰는데 왕이 도피할 정도로 위기상황이었다. 소금 밀매업자 ‘황소’가 3년 동안 황제를 지낸 난이다. 민란이지만 최치원이 진압부대로 간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벌어지는 병흉 두 가지 재앙이 서쪽에서는 멈췄고 동쪽 신라에 옮겨 와서 험악한 중에서 더 험악하여 굶어죽은 시체가 들판에 별처럼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이 상황, 민란이 엄청 일어나고 백성들이 굶어죽고 세금을 악착같이 거둬들이니 백성들이 살 수가 없다. 궁예나 견훤이 다른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신라는 경상도 안쪽만 차지하는 지경에 이른다.

처용설화, 모든 것을 잃은 비통한 변방 사람 이야기

처용의 처지는 어땠을까. 처용이 그 당시 풍습을 따랐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당시 처용의 심정이 어땠을까. 최치원은 신라가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다. 처용이 신라궁궐로 들어간 10년 전후 이야기다. 최치원은 역사의 소용들이 속으로 들어가고, 처용에겐 이제 남은 것이 없다. 자기 아내도 잃고...
처용 이야기를 벽사진경(僻邪進慶)이라 한다. 사악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 당대는 예술과 종교, 주술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에 신궁에 서서 제를 올린다거나, 남산신, 북악신, 지신에게 제를 올린다든지, 그런 일에 처용이 행위나 무희를 하지만 결국 양반의 노리개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방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백성은 굶주리고 수탈당하고 백성들 시체는 들판에 별처럼 흩어지고, 들판에서 민중들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예인의 길이라는 자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처용이 생각한 역신은 이 신라의 귀족이고 왕족이었다고 본다. 아내마저 잃고 비극적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없는 상황,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비통함과 춤, 그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리=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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